"전 약간만 복잡해지면 일을 못 해요.
머릿속이 뒤죽박죽되면서 절망스럽고,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해요"
어릴 적 부모에게 방임과 학대를 지속해서 받고 자란 어느 분이 보내주신 짧은 문자이다. 내용은 짧았지만 느낌은 너무 컸다. 그의 사연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돌봄이 중요한 유아기
아이가 태어나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울고 대소변 내는 것 외에 아이가 무얼 할 수 있겠나. 동물들은 낳자마자 즉시 제 발로 일어나 제 살길을 찾지만, 인간의 유아기는 유독 길어서 1년 이상 보살펴 주어야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다. 그래서 자아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바로 그 지점이 인간이 갖는 비극이라 했다. 지나치게 유아기가 다른 포유류에 비해 길다 보니 유아기에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면 평생의 후유증이 남는다는 것이다.
유아기도 중요하지만, 유년기 역시 중요하다. 크게 보면 출생 이후 취학 전까지는 한 인간의 성격과 행동 패턴이나 중요한 습관을 형성하는 시기이기에 이 시기를 무난히 보내면 무난한 성격이 되지만 이 시기를 어렵게 보내면 어른이 되어서 내면에 감당 못 할 혼란과 분열이 일어난다. 지금의 나와 예전의 어린 내가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며 갈등하는 순간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부모의 정서적 돌봄을 받지 못한 ‘D Type’
흔하지는 않지만 부모 중에서 아이들을 혐오하는 부모들이 있다.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성장한 후에 부모가 되고 아이를 낳은 후에 그 무기력한 아이를 보며 내면의 부정적인 아이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이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머리가 나쁘거나 외모가 못생기고 한심하며 게으르고 할 줄 아는 건 똥오줌 싸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지 않아도 아이에게 필요한 정서적 돌봄이나 반응을 해 주지 않아도 아이는 자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린다. 애착 이론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D Type’이라 한다. 'D type'은 'disorganized/disoriented' 라는 의미인데 혼란스럽고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이다.
이 'D Type'의 문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옷을 입어도 단추를 위에서 꿰면 되는데 대충 단추를 잠그고 다 했다고 한다.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정상아로 태어났지만, 아이의 뇌 회로가 어린 시절 망가진 것이다. 사실 나는 부모를 원망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D Type'을 상담해 보면 정말 화가 난다. 어떻게 자식 교육은커녕 자녀의 기본적인 인권(어린 시절에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권리)을 이렇게 망가뜨렸을까 하는 분노 때문이다. 위 문자를 보낸 분은 어린 시절 그런 기억을 말해 주었다.
"엄마 나 고기 먹고 싶어" 그러자 엄마가
"가만있어, 고기 줄 테니" 그리고 생선을 구워준 것이다.
"이거 고기 아냐!" 짜증을 내는 아이에게
"그냥 먹어! 이것도 고기야! 물고기!!"
엄마로 인해 생긴 어린 마음의 상처와 혼란이 어땠을까 싶다.
차근차근 계속 벗어나보기
'D Type' 중에서는 체육이나 예술 쪽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지만 결국 자신의 문제를 치유하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서툴거나 한없이 일을 미루거나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 실수를 해서 그동안 쌓은 성공의 길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그렇게 망가지고 한심한 모습의 자신을 바라보며 그 부모가 해 준 말을 동일하게 반복한다. "네가 본래 그렇지 뭐" 그렇게 부모의 저주를 스스로 확인을 한다.
그래서 벗어나야 한다. 이 악물고 벗어나야 한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나도 내가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데 만사가 귀찮고 몸이 무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심호흡 한번 하고 벌떡 일어나 무언가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하게 된다.
'D Type'이라 느끼는 분들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하다 보면 하게 되니 제발 가만히 있지 말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을수록 세뇌와 최면이 깊어지는 것이다. "한심한 인간아 네가 뭘 할 수 있겠니?" 이 소리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무슨 일을 할 적에 잠시 꼬이거나 일이 진척되지 않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럼 순간 “다 틀렸어!”라고 말하지 말고, 잠시 심호흡을 하고 “여기까지는 잘 만들어왔으니 잠시 숨을 쉬고 안 되는 곳이 어딘지 일단 가만히 살펴보자”라는 마음으로 관조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세상에 ‘차근차근’하여 안 될 일이 없으며 ‘계속’하여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이 있다. 맞다. 그런데 일이 안되거나 꼬이면 확 쌓아놓은 걸 스스로 무너뜨린다. 그게 부모가 심어준 그릇된 습관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태도인지 자신에게 엄중히 물어보길 바란다.
그렇게 좌절하는 순간 부모의 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는 한 여전히 자기를 비난하고 자기를 한심스럽다고 하면서 'D Type'의 운명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헛될 뿐이다. 부모가 많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원망만 하는 것도 너무 아이 같은 패턴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원망할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그러나 충분히 원망했다면 이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차근차근 어려운 순간을 관조하도록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행복을 만드는 교육
시대가 변화해도 여전히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행복을 만드는 교육’은 유아교육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 ‘중요한 발상’과 ‘실천’을 찾는 동심연구소의 노력입니다.
[글]
변상규교수 l 대상관계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특임교수
[저서]
네 안에서 나를 보다(2007), 마음의 상처 심리학(2008), 자아상의 치유(2010), 때로는 마음도 체한다(2014)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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