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발도 없는데 어떻게 제집을 찾아오는 걸까요? 뜨겁던 여름이 순식간에 가버리고 선선하다 못해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스며드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 싱그럽던 초록에서 누런 황금 벼로 익어버린 논의 풍경, 알록달록 세상천지의 단풍까지. 잿빛 겨울이 오는 것을 거부하는 듯 총천연색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은 가을입니다. 이렇듯 아름다운 계절 가을을 물씬 느끼게 해 줄 수 있도록 그림책 몇 권을 선정했습니다.

 

l 아기곰의 가을 나들이 l 


저자 데지마 게이자부로 | 역자 정근 | 보림 


‘아기곰의 가을 나들이’는 ‘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줍니다. 북쪽 나라 가을 산이 울긋불긋 물들어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때에 엄마랑 연어를 잡으러 가는 아기곰이 등장합니다. 달빛이 숲속에 비칠 때 엄마곰과 아기곰은 연어를 기다립니다. 


“야! 왔다” 


바로 연어 떼가 찾아온 거죠. 엄마곰은 커다란 연어를 물고 왔지만 아기곰에게 주려 하지 않아요.


“자기 힘으로 잡아야지!”라고 단호하게 말하지요. 아기곰은 물가를 서성이다 결국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자신만의 연어를 잡아내는 데 성공하죠. 


우리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일 것 같지만 어느 순간 훌쩍 자라나 놀라운 일을 해내기도 합니다. 품 안에 있던 아이가 혼자 힘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요. 첫 연어잡이에 성공한 아기곰은 앞으로의 인생도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온몸으로 깨달았을 거예요. 목판으로 강인하게 표현된 곰의 모습과 울긋불긋 선명한 색채로 표현한 데지마 게이자의 그림도 함께 감상해보세요.  


l 아빠, 나한테 물어봐. l


글 버나드 와버 | 그림 이수지 | 역자 이수지 | 비룡소


‘아빠, 나한테 물어봐’는 공원을 산책하는 아빠와 딸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공원에서 아빠와 아이는 날아가는 기러기, 나비, 잠자리, 들꽃을 살펴보기도 하고 바스락거리는 단풍잎을 발로 밟아보기도 합니다. 아빠와 주고받는 대화의 흐름을 표현한 공간과 계절은 바로 ‘가을’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이 머무는 장면은 바로 아이와 아빠가 단풍잎에 누워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이에요. 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가을 햇볕이 느껴지며, 한가하고 아늑하고 다정한 시간이 상상됩니다. 가을이라는 시간을 한 권의 책에 온전히 담아낸 듯해요. 


l 알사탕 l


저자 백희나 | 책읽는곰

마지막으로 소개할 그림책은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입니다. 그림책 곳곳에 흩날리는 단풍잎, 은행잎을 보아 책 속의 계절은 가을이죠. 단풍이 떨어지는 환상적인 풍경이 페이지 전체에 펼쳐져 속삭이는 단풍의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혼자 노는 것이 외로운 주인공 동동이는 알사탕을 먹으면서 사람과 사물의 마음을 듣게 됩니다. 심지어 쇼파의 마음, 강아지 구슬이의 마음까지도요. 잔소리 대마왕 아빠의 마음을 듣게 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소식도 알게 됩니다. 알사탕을 매개로 상대방의 속마음을 듣게 된다는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듣는 일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듣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낙엽이 휘날리면서 ‘안녕’이라고 인사하며 떨어지는 나뭇잎은 동동이에게 먼저 마음을 보여주었죠. 아마도 다양한 사물과 사람의 마음을 듣는 일이 중요하다는 표현인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친구를 사귀게 되는 내용으로 끝이 납니다. 


가을은 결실을 맺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한 해의 농사를 갈무리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수고로움을 나누기도 합니다. 잘했든 못했든, 성과가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더 많이 자랐든 덜 자랐든 괜찮습니다. 가을은 모두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성장과 축제의 시간이니까요. 


우리에겐 가을의 인사가 필요합니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수고했어” 라고요.





동심책방

동심연구소가 우수작가와 함께 하는 ‘동심책방’은
책을 통한 공감과 이해, 질문과 상상을 통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를 선물합니다.

[글] 김소라 작가
골목책방 ‘랄랄라하우스’ 대표, 2018 홍재문학상 수상, EBS 생각하는 콘서트 외 방송 출연 및 독서, 토론, 글쓰기 강연

[저서]
맛있는 독서토론 레시피(2013), 그림책은 재밌다(2015), 엄마의 그림책(2016), 비주얼씽킹 스토리로 말하라(2018), 바람의 끝에서 마주 보다(2020) 외 다수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