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따뜻한 걸 좋아한다. 

따뜻한 환경, 따뜻한 인격, 따뜻한 이불, 따뜻한 분위기. 따뜻한 음식. 따뜻한 차...


그런데 인간은 이 첫 ‘따뜻함’을 현실에서 느낀 게 아니라 아직 현실이 되기 이전의 상태,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느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느낀 첫 따뜻함의 온도

엄마의 뱃속에서 아기는 첫 따뜻함을 누리며 느꼈다. 이 따뜻함은 처음부터 아기가 온몸으로 느꼈던 근원적 온도요 원형적 온도였다. 그게 바로 '체온'이다. 36.5도. 그 온도는 인간이 경험한 첫 온도이다. 따뜻한 온도 말이다. 


그런데 아기가 9개월, 10개월이 넘으면 현실의 세계로 나오라는 엄마의 신호를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 아기는 현실의 온도를 피부로부터 느끼며 놀라게 된다. 아기가 마주하는 현실의 온도는 너무 춥기 때문이다. 아기가 출산 시에 경험하게 되는 온도는 36.5도 그보다 대부분 낮기에 아기는 달라진 온도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온몸으로 여과 없이 아기가 경험하는 현실은 그야말로 충격이다.

 

그래서 도널드 위니캇 같은 영국의 소아과 의사는 모든 아기는 출산 이후에 출산 이전의 환경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기가 출산한 이후에 태중(胎中)과 너무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될 때 느끼는 아찔함과 당황스러움, 당혹스러움, 그걸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엄마의 품’이라는 것이다. 


엄마의 품은 따스하다. 엄마의 가슴은 더 따스하며 엄마의 젖은 그야말로 아기가 태아로 살았던 고향(자궁)으로 회귀한 것 같은 착각을 심어줄 정도로 달콤하고 따스하기만 하다. 누구나 이 ‘품’의 경험을 하였기에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니캇에게 있어서 이 ‘품’은 인격의 요람에 해당하며 아기 내면의 중심 즉 건강한 self(자기)의 시작점이 품(holding)이라 하였다. 


품의 부재가 주는 의미 

그런데 그 품이 없거나 너무 적거나 따스하지 않을 때 아기는 절망을 경험한다. 태어나 맞는 현실 그 자체도 괴로운 것이 인생인데 따스한 품까지 부재하면 아이에게는 거의 고문에 가까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만 그럴까! 오늘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수많은 어른아이들, 그들을 우리는 성인, 어른이라 부르지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눈을 감은 채 피곤함에 지쳐 잠시라도 환상의 세계(자신만의 공간)에 머물고 싶은 많은 사람들의 표정처럼 때로 사람에게 현실은 누구나 버거움 그 자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현실을 버텨낼 힘도 품에서 나온다. 어른이나 아이나 우리 모두에게는 언제나 이 ‘품’이 필요하다. ‘따스한 품’ 말이다.


품의 힘을 가진 ‘놀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때로는 낯선 현실을 마주하는 공간이다. 위니캇은 그런 낯선 공간에서 필요한 것은 먹을 것이나 하루 일과 중 따라야 하는 규칙이 아니라 바로 플레이(play) 즉 ‘놀이’하는 마음이라고 주장했다.


놀이는 그저 논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가진 본능의 표출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행위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선생님을 보면 반갑고 친구들을 보면 같이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네고 싶고 장난기가 발동하며 뭔가 흥미롭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위니캇은 ‘play 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품’이다. ‘holding’ 말이다. 그 따스한 품으로 인해 우리는 고달픈 현실과 삶을 견디며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품어주는 ‘품’의 힘은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이 곤혹스러운 현실을 마치 환상의 세계처럼 살아볼 만한, 내 존재를 영글게 하는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한 품’ 나누기

겨울에는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짧다. 이렇게 일조량이 감소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빛의 부족은 심리적으로 따스함의 부족으로 느껴질 테고, 평소에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심리적으로 더 견디기 어려운 계절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랬다. 그냥 흐리기만 한 가을과 겨울날은 왠지 온종일 우울하곤 했다. 요즘은 흰 눈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한 번은 추운 12월 어느 날인가 눈을 떠 보니 밖에 눈이 소복이 쌓인 모습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분명 추운 날임에도 그 눈이 마치 온 세상을 안아주고 덮어준 것 같은 느낌을 주어 따스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나의 ‘품’으로 아이들을, 가족을 안아주자. 하루 동안 느낀 현실의 고됨을 벗고 ‘따뜻함’을 나누어보자. 함께 마실 따뜻한 한 잔의 차라도 함께!


[글] 변상규교수
대상관계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특임교수


[저서]
네 안에서 나를 보다(2007), 마음의 상처 심리학(2008), 자아상의 치유(2010), 때로는 마음도 체한다(2014)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