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란 아이에게 신 같은 존재이다. 또한 삶의 모델링이면서 아이에게 삶의 지도를 만들어주는 자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격이 부족한 부모가 너무 많아서 자녀들에게 크나큰 그리고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부모를 상담하면서 느끼는 부모 역할의 중요성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지만 분명한 건 그릇되고 나쁜 양육이 분명히 있고, 자녀를 건강하게 만드는 좋은 양육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흑백 논리를 안 좋아하지만 이번 글은 그런 양육을 명확히 해야겠기에 구분을 선명히 해보도록 하겠다.

 

나쁜 양육과 좋은 양육

좋은 양육은 자녀에게 삶이란 모험으로 충만한 곳이며 언제나 도전할 수 있는 것이라 가르친다. 

나쁜 양육은 도덕을 강조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법부터 배우게 한다.


좋은 양육은 도덕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며 남의 눈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양육이다. 

나쁜 양육은 인간의 정상적 본능에 대해 죄다 눈감게 만들거나 나이 들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지금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좋은 양육은 인간의 모든 본능은 선한 것이며 다만 이것이 악용될 적에 자신과 타인에게 큰 피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쁜 양육은 신의 이름이나 신의 말씀으로 아이들을 정죄하고 신이 너희들을 다 지켜보고 있으며 뭔가를 어길 적에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나쁜 양육은 의무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를 어길 적에는 인간도 아니라고 다그친다.

좋은 양육은 의무보다 권리를 가르치며 의무를 행할 적에도 의무의 이유와 그 유익과 한계를 가르친다.


나쁜 양육은 감정을 억누르라 가르친다. 혹은 지나치게 감정을 다 표현하라고 가르친다. 

좋은 양육은 감정을 적절히 억누르면 얻는 게 많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너무 억압하는 것은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너무 표출하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나쁜 양육은 삶이 고난과 고통과 수고와 인내뿐이라고 가르친다.

좋은 양육은 삶이 고난과 수고를 통해 생각하지 않은 새로운 차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나쁜 양육은 아이들에게 강한 자존심만 만들어 놓는다.

좋은 양육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자존감을 심어준다.


나쁜 양육은 아이들에게 모든 건 결국 돈이요 모든 건 결국 힘의 논리로 움직여진다고 가르친다.

좋은 양육은 돈, 권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게 좋은 것이라 가르친다. 옳음의 근본은 휴머니즘 즉 인간의 가치가 항상 우선이라고 가르친다.


나쁜 양육은 배우자가 못마땅하긴 하지만 배우자가 자녀에게 무언가를 훈계할 적에 당신이나 하라고 아이 앞에서 면박을 주거나 당신도 문제라고 직면시킨다.

좋은 양육은 배우자가 못마땅해도 자녀를 훈계할 적에 가만히 있어 주거나 나중에 배우자에게 그릇된 정보나 그릇된 훈육에 대해 주의해 달라고 부탁한다.

 

가장 나쁜 양육은 부모 스스로 우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들이 내 부모는 언제나 우울한 부모이며 그렇게 우울한 이유가 결국 아빠나 엄마에게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좋은 양육은 부모 스스로 삶이 우울하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근본을 잃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렇게 어렵고 안 좋은 상황임에도 아이들이 추구해야 할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두가 미숙한 부모

더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떠오르는 대로 써 보았다.

모든 부모는 다 미숙하다. 미숙함이 죄는 아닐 테지만 그러나, 미숙한 걸 그대로 알면서도 방치한다면 그게 ‘악’이라고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은 강하게 주장했다.


삶이 불행하다면 불행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가 복잡하다 하여 눈 감고 손 놓고 될 대로 되라고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는 분석심리학자 칼 융의 말대로 사람이 살아가는 건 결국 각자에게 부여된 어떤 소명이 있다고 믿는다. 소명이라는 것이 종교적 직업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각자가 가진 재능, 달란트를 통하여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너무 높게 봤는지 모르지만 나는 융의 가르침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그렇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치 보고 인정받음에 목숨을 걸고 조급하고, 너무 도덕적이며, 너무 종교적이며, 너무 강박적이고, 너무 세상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여기며 살아가게 만드는 건 절대 교육이 아니라 사육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Education’ 의 의미

교육이라는 영어 ‘Education’은 끄집어낸다는 뜻이다. 아이들 내면의 잠재성을 끄집어내고, 선함을 끄집어내며, 인류애를 끄집어내고, 행복을 끄집어내어 그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희망적이고 더 인간적이며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돕는 일, 그게 정말 교육이라 믿는다.


우리 그런 교육 하는 거 맞는가?

지금처럼 가르치고 교육한 아이들이 후에 행복한 어른이 될 것이라 말할 자신이 있는가!


행복을 만드는 교육

시대가 변화해도 여전히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행복을 만드는 교육’은 유아교육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 ‘중요한 발상’과 ‘실천’을 찾는 동심연구소의 노력입니다.

[글] 변상규교수
대상관계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특임교수


[저서]
네 안에서 나를 보다(2007), 마음의 상처 심리학(2008), 자아상의 치유(2010), 때로는 마음도 체한다(2014)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