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할머니 전성시대’입니다. 이제부터 시작! 이라고 외치는 K-할머니가 대세죠. 지구촌 사람들은 ‘윤여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74세 한국 할머니에게 찬사를 보내주기도 했어요. 전 세계를 홀린 또 다른 K-할머니인 ‘박막례 할머니’ 역시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130만 명의 웃음을 끌어내고 있고요.

이렇게 나이를 잊지 않고 도전하는 K-할머니가 아니더라도 ‘할머니’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부모가 주는 존재의 단단함을 넘어서는 이 시대의 등불과 같은 의미 말이죠. 

지금 70, 80대 할머니들은 일제 강점기 후반부터 6·25전쟁을 포함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끌어안은 세대에요. 때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기도 하고 자식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으며 내리사랑을 실천한 그들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이 ‘할머니 사랑’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가끔 손자, 손녀의 얼굴이나 보며 예뻐해 주기만 하던 홀가분한 위치에서 직접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책임 있는 위치로 자리를 바꾸는 할머니들이 늘고 있죠. 

오늘은 아름다운 선율 같은 포근하고 편안한 할머니를 떠올려 볼 수 있는 동화책으로 들어가 보려고 해요. 

** 흰눈 **

(공광규 글/주리 그림/바우솔)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공광규 시인의 시에 예쁜 그림을 입힌 그림책인데요.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차가운 날씨에 봄을 기다리는 매화나무 가지에 내려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찔레나무에도 내려앉지요. 

김이 모락모락 고소하게 피어오르는 갓 지은 밥에 이른 저녁을 드신 할머니는 돌담 너머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돌아오는 주말에 서울 사는 큰아들과 손주 녀석들이 오려나 생각하고 있을까요?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앉다 앉다 내릴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할머니의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아요. 할머니 머리 위에서 핀 흰 꽃이야말로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롭지 않을까요? 세상 풍파에 굴하지 않고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의 할머니야말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이니까요.

이렇게 자식을 키우느라 늘 바쁜 우리 할머니. 오늘은 또 어디로 가는 길일까요? 할머니의 바쁜 하루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 따르릉 할머니, 어디 가세요? **

(김유경 글/씨드북)

따르릉 할머니는 아침부터 아주 바빠요. 매일매일 자전거를 타고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며 소소한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따르릉 할머니!

빨간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우리 동네 따르릉 할머니 이야기랍니다.

따르릉 할머니가 타고 가는 자전거는 혼자만 있는 외로운 길로 가지 않아요.

할머니의 따스한 마음이 필요한 곳에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부지런히 가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건 상대방의 속도라고 해요. 내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상대방의 속도가 중요하지요. 따르릉 할머니는 관계 속에서 속도를 조절하며 다가가지만 바로 그건 연륜과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속도이지 않을까요?

학교에 늦은 옆집 아이 걱정에 빠른 다리가 되고 아픈 고양이에게 구급차 역할이 되어주고 배달이 어려워 답답한 슈퍼 아줌마에게 기꺼이 배달맨이 되어 마을 곳곳을 누비며 걱정과 고민을 해결해주는 따르릉 할머니.

빨간 헬멧을 쓰고 빨간 자전거를 타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할머니 덕분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아마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 속에 할머니의 인생과 소중한 순간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죠.

여기 어린 손녀를 안고 있는 할머니도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어요. 

**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 **

(시모나 치라올로 글/미디어창비) 

그런 할머니에게 안겨 살갑게 볼을 비비고 있는 손녀 역시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네요.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순간을 아주 따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의 생일을 준비하느라 모두가 분주한 가운데 할머니를 바라보던 손녀는 문득 할머니가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기도 하고,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걱정스러워 보이는 듯했어요. 손녀가 다가가 그 이유를 묻자 할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많아서 그럴 거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손녀는 할머니에게 주름살이 걱정되는지 묻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이 주름살이 좋다고 해요. 그 안에는 할머니의 소중한 기억이 담겨 있다고 하면서요.

어떻게 저 작은 주름 안에 기억이 담길 수가 있을까요? 손녀는 주름살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그 안에 어떤 기억이 담겨 있는지 할머니에게 묻기 시작해요. 

아이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할머니의 주름살 속에 소중한 추억들이 차곡차곡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할머니에게 생긴 주름살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소중한 순간들. 오랜 경험과 삶이 묻어있고 그 속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할머니의 주름들. 그 주름은 한 사람의 삶의 무늬이자 결이지 않을까요?

이야기 속 할머니와 손녀의 따뜻하고 밝은 표정들이 우리의 마음을 더 부드럽고 따사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할머니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보고 있노라면 따뜻하면서도 단호하고 자상하면서 까칠한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요. 가족을 위해선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그녀이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린 소녀가들어있는 우리 할머니. 모두 우리 할머니죠. 

영화 미나리에서 정이삭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를 “모든 우리의 할머니들께”로 남겼어요. 

오늘의 마지막도 그렇게 장식하려고 해요. 

“To All Our Grandmas”

[글] 동심영유아교육생활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