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치’의 외모를 보면 괴수가 떠오른다. 크리스마스에 웬 괴수 영화인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그린치'는 괴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온몸이 녹색 털로 덮여있고 얼굴은 보기 흉한 주름으로 가득 차 있는데다 코와 인중은 불독을 닮아 위로 들려있다. 


노란빛 안구에 조그마한 눈동자까지 비호감 요소는 모두 합쳐놓아 사람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얼굴이다. 이런 분장은 외모로 인해 타인에게 평가되고 그로 인한 상처를 안고 비뚤어진 채 외롭게 살아간다는 캐릭터 설정을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캐릭터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그려진다는 서사적 측면과 인간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는 시각적인 면에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그린치 l 전체 관람가

개봉 l 2000. 12

배급ㅣUIP코리아

동명의 아동 도서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뷰티풀 마인드’, ‘다빈치 코드’ 등을 만든 론 하워드가 감독하고 ‘트루먼 쇼’로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짐 캐리가 주인공 '그린치'를 연기했다. 


펑펑 내리는 눈과 길거리의 빨갛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캐럴은 누구의 마음이라도 설레게 만든다. 모두가 행복하고 기쁜 크리스마스를 ‘굳이’ 가장 싫어한다고 콕 집어 말하는 '그린치'를 궁금해하는 '신디'의 질문에서부터 이 영화는 시작한다. 왜 '그린치'는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걸까?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그린치'는 얼굴에 난 수염이 콤플렉스였다. 좋아하던 친구 ‘마사’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면도기로 수염을 밀다가 그만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가 생겼다. 상처 난 얼굴 때문에 모두에게 비웃음을 당한 '그린치'는 수치심과 창피함에 교실에 있던 트리를 던져버렸고 그 이후 마을을 떠나 쓰레기통으로 연결된 산꼭대기에서 줄곧 혼자 살아간다. 이것이 '그린치'가 크리스마스를 싫어하게 된 이유이다. 


마을 사람들이 너무 미웠던 '그린치'는 굴뚝을 타고 남의 집으로 들어가 청소기를 이용해 집안의 모든 물건과 선물들을 빨아들인다. 이 영화의 원제는 ‘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 직역하면 ‘'그린치'가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칠까’인데 크리스마스를 통째로 훔친다는(그것도 청소기로 빨아들여서!) 상상은 아이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만하다. 


선물이 사라져 슬퍼하리라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이 둥그렇게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그린치'는 당황한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린치’는 곧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선물이 전부는 아닐지도 몰라.”

눈물을 흘리며 마음이 풀어지는 '그린치'를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주 분명하게 읽힌다. 주고받는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변을 살피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며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연대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도덕적인 교훈이다. 


크리스마스에 아이들과 함께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이지만, 기분 좋게 보고 넘기기에는 걸리는 점이 있다. 바로 아무도 '그린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린치'가 사회로부터 떨어져 산꼭대기에서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동안 '그린치'를 놀리고 상처 입힌 사람들은 선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죄책감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그런 '그린치'가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천사 같은 캐릭터인 '신디'의 도움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린치'가 가진 마음의 병의 원인인 가해자가 명백히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직접 진정 어린 사과를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으려면 울면 안 된다는 노래 가사는 시대가 변화하며 반박 받고 있다. 우는 게 어때서 선물을 미끼로 울지 못하게 만드냐는 거다. 슬프면 울 수도 있고, 기뻐서도 울 수 있고 울고 싶으면 우는 거지. 눈물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선물 증정 리스트에서 제외되어야 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이다. 겉모습을 보고 '그린치'를 놀려댄 사람들, 경멸과 혐오의 눈빛을 보낸 사람들, 가까스로 마음을 열어가던 '그린치'에게 면도기를 선물해 그를 다시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고 상처를 상기시킨 시장 같은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선물은커녕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거리도 한산하고 누구든 만나지 않는 게 중요해져 버린 처음 느껴보는 낯선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집 안에서 차분히 앉아 연락처 목록을 훑어보며 내가 사과해야 할 사람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의 메시지를 보내며 연말을 보내보면 어떨까. 그럼 분명히 좋은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씨네리터러시

‘씨네리터러시’는 오래전부터 교육의 도구였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석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동심연구소가 추천합니다.

[글]
류승진 감독
다큐멘터리 감독 및 미디어교육 전문가

[작품]
독립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 ‘제5종보급품’ (2018년DMZ영화제입상) 외 다수 영화 제작 및 아트퍼포먼스 제작

[사진]
UIP 코리아,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