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런데 바라기만 한다. 그게 문제다. 바라기만 한다고 행복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정말 인생에 행복하길 원한다면 ‘결심’해야 한다. 


행복해지기로 결심하고, 행복하게 살기로 결심하고, 행복함이 느껴질 때마다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고 춤춰야 한다.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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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생에 대한 

수동적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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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행복해질 때가 오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언젠가가 오긴 하겠지만, 아주 긴 인내를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그 ‘언젠가’가 쉽게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인생에 대해 수동적으로 운명이 이끌면 운명이 이끄는 데로(그것을 흔히 팔자라 부른다), 일이 닥치면 닥치는 대로 수습할 뿐 의지를 가지고 자기 인생을 바꾸어 보고 싶은 결심은 그에 비해 전혀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자기 삶의 게으름인데 그런 게으름도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나르시시즘에 해당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심리적 ‘항상성(homeostasis)’을 지니고 산다.


나는 항상성을 ‘항상 늘 그래야만 하는 경향성’이라고 본다. 즉 환경이 나쁘면 그 나쁜 환경에 그대로 자신을 방치해 둔다. 아니 그런 환경에 자신을 맞춰 살아가는 적응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너무 적응을 하다 보면 ‘창의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도전정신, 실험정신까지 모두 다 잃어버린다. 그저 만사가 귀찮은 ‘귀차니즘’이라는 매너리즘에 갇혀버린다.


그런데 그럴수록 꿈과 비전은 사라지고 늘 망상과 멍때리기와 잡념만 무성하다. 그렇게 살다 보면 자꾸 마음이 허망해지고 한숨만 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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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과 행복으로 채우는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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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면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그것을 극복할 대안은 마련해 놨다. ‘감탄’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하는 것이다. 원하는 음식을 먹고 맛이 있으면 "아~참 맛있다!" 이렇게 감탄의 말을 한다.


원하는 책을 구입했을 때 역시 "이 책 참 보고 싶었는데 이 책을 구해서 참 좋다!" 그렇게 말을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뇌가 그걸 듣고 ‘맛이 있어서 참 좋구나!’라는 반응을 하게 된다. 


내가 나 자신에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내가 즐겁고 행복하다는 걸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런 기법들을 단순하다고 무시하지 않길 바란다. 왜냐하면 이런 감탄과 감사가 모이고 모여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루를 사는 시간은 24시간이다. 나는 그 24시간 중 즐거운 시간을 이야기하자면 바로 식사 시간이다. 어림잡아 시간을 계산한다면 60분 정도 되겠다. 그리고 흥미로운 책을 보고 지적인 자각을 통해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 시간이 1시간이라면 총 2시간 동안 나는 즐거웠던 것이다. 수면시간도 그렇다. 8시간을 푹 잤다면 8시간이 즐거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은 열네시간이 불행한 것은 아니었어도 오늘 하루 중 먹고 자며 책을 본 순간은 내가 즐거웠던 시간으로 채운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반성해 보면 그 시간이 내게는 행복한 시간이라는 결과로 남는다. 이런 즐거움이 쌓여야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도 연습이다. 오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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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찾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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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자기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이 세상 그 누가 행복을 주고 만족을 준다 해도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행복하지 않은데 누가 옆에서 행복을 준다 한들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


행복이 왜 중요하냐면 하루에 어느 정도는 행복해야 삶의 낙이 있고 삶에 대한 의욕이 살아나기에 그렇다. 삶의 의욕과 낙(樂)이 있어야만 인생에서 치명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우울함과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 우울하다. 이 우울을 전부 다 없애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우울을 견디고 우울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는 데 그 힘이 바로 ‘인생의 樂’과 ‘삶에 대한 의욕’이다.


사람은 우울해지면 본능적으로 된다. 과하게 음식을 먹거나 과하게 술을 마시거나 과하게 자거나 과하게 성에 심취하려 드는 건 그 근원이 우울해서이다.


나이도 우울함에 영향을 준다. 나이를 먹으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꾸준한 운동이 그나마 중요하다고 하는데 매일매일 중독되다시피 운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지는 심신을 견딜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공동체 정신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참자기를 찾아가는 자기 탐구와 자기실현의 과제가 더욱더 중요하다. 그런데 평소 남들과 어울리기만 하고 참된 자기를 찾아가거나 알아가는 공부를 해 본 적 없는 이들은 그런 과제들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그런 낯섦을 경험하는 것은 정상적 심리다. 누구나 그렇게 산다. 그런 낯섦을 견디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자신의 참자기를 찾아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면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 된다. 우울하고 힘들고 고달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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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과 

행복의 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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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결심을 해도 작심삼일로 끝난다고 말한다. 걱정 마시라. 작심삼일을 극복할  방법이 있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삼일마다 한 번씩 다시 한번 결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열 번, 백번만 결심하면 나중에는 저절로 ‘행복의 발전기’가 돌아갈 것이다. 모든 것은 습관이다. 성향이다. 사람하기 나름이고 훈련하기 나름이다. 그런 훈련의 뿌리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 정말 자기 삶을 사랑하고 자기 몸을 사랑하고 자기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힘들지만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과 결점까지 사랑할 줄 아는 그런 건강한 ‘나르시스트’가 되어야 한다.


얼마 전에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결심을 했다.

"나 정말 행복하게 살아볼 거다"

놀랍게도 평생 이런 생각, 이런 결심해 보지를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돈이 있고 뭔가를 사야 즐거운 줄로만 안다.


행복에 관한 한 흔히 말하듯 초짜 수준도 못 된다. 돈이 부족하고 원하는 것을 사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는 길…


내 성향에 맞는 행복, 맞춤식 행복, 그 행복을 결심해야 한다. 그냥 행복해지는 건 없다.

나와 우리 모두에게 소확행이 늘어가길 바란다.


행복을만드는교육

시대가 변화해도 여전히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행복을 만드는 교육’은 유아교육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 ‘중요한 발상’과 ‘실천’을 찾는 동심연구소의 노력입니다.

[글] 변상규교수
대상관계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특임교수


[저서]
네 안에서 나를 보다(2007), 마음의 상처 심리학(2008), 자아상의 치유(2010), 때로는 마음도 체한다(2014)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