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메리>의 원제는 ‘Gifted’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아이와 그 주변 어른들의 고민과 실수 그리고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 너머의 숫자 세계를 탐방 중이라면, 유수한 수학자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면, 나는 잠들기 전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고 누구에게 데려가서 질문하게 하고 주말 체험활동을 위해 아이를 어디에 데려가는 게 좋을까? 나의 선택 하나하나로 만들어질 아이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까? 이 영화는 앞선 물음들에 대해 서로 대치되는 선택들을 보여주며 우리를 그 고민의 장으로 이끈다.
어메이징 메리 | 12세 관람가
개봉 | 2017. 10.
배급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7살 수학 천재 소녀 메리(맥케나 그레이스)는 해변가 조용한 마을에서 삼촌 프랭크와 함께 자유롭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간다.
줄곧 홈스쿨링으로 공부하던 메리가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한 이후로 잔잔하던 일상이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아이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본 담임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은 메리를 영재학교에 다니게 할 것을 프랭크에게 제안한다.
하지만 프랭크는 메리의 엄마이자 자신의 여동생인 다이앤 애들러처럼 메리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차라리 덜 똑똑하지만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며 제안을 단칼에 거부한다. 하지만 늘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아 프랭크를 떠나지 않는 질문 때문에 그는 괴로워한다.
과연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일까? 내가 아이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메리의 할머니 에블린이 나타난다. 메리를 보자마자 다이앤이 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예감한 에블린은 메리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 아들 프랭크와 긴 소송을 이어간다. 에블린은 선택받은 자들이 타고난 재능은 적절하게 사용되어 세상의 진보에 기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본인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을 통해 실현하려던 에블린은 다이앤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이후 7년 만에 나타나 이번에는 손녀인 메리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한다.
에블린이 딸의 죽음을 겪고도 본인의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았으며 처음 만난 손녀에게 관심 있는 것은 아이가 가진 재능뿐인,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 것은 아쉽다.
하지만 아이 교육에 대한 프랭크와 에블린의 극단적인 의견 차이가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저울 양쪽에 걸려있는 것은 ‘정서적 안정과 행복’과 ‘직업적 성공과 명예’이다. 잔인한 질문이지만 둘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이 선택이 더욱 어렵고 복잡한 이유는 내 선택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는 건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아이라는 점이다.
메리의 사명은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들을 해결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개인적인 삶과 일상은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에블린은 프랭크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의 삶(바퀴벌레 나오는 집, 수준에 맞지 않은 학교, 전용 노트북을 사주지 못하는 경제적 상황 등)이 메리에게 합당하지 않은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메리에게 굉장히 소중한 존재인 외눈 고양이 프레드와 유사가족의 어머니로 그려지는 이웃집 아주머니인 로베르타(옥타비아 스펜서)는 에블린에게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판사로부터 이틀간의 접견 시간을 부여받은 에블린은 메리에게 수학의 세계를 맛보여준다. 다이앤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엄마에 대한 궁금증과 그리움을 해소시켜 주고 흥미로운 전문 서적들과 교수와의 문제 풀이를 통해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며 넓은 숫자의 바다로 유도한다.
그 이틀간의 시간들에 만족감을 느끼고 재밌었다고 말하는 메리를 보며 프랭크는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진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이 아이를 위하는 게 무엇일까?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이 아이를 내가 혹여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이가 특별한 재능에 희생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또래들과 나눠가며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랬던 다이앤의 바람과 그것을 지켜주려던 프랭크의 신념은 더 넓은 세계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메리를 통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메이징 메리>는 삼촌 프랭크와 할머니 에블린의 대립을 통해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아이가 이 세상에서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어른들 기준에서 중요한 것들만을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여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경험하게 해주고 기다릴 것인가. 0과 1 두 개뿐인 것 같던 선택지 사이에서 0.5라는 새로운 숫자를 만들어내며 메리는 진정한 균형과 행복을 찾아간다. 어른들의 시행착오 속에서 메리는 재능의 발현과 평범한 일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와 모두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감독은 영화를 통해 수학과 물리만큼 미술과 음악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메리는 자기보다 수학은 못 하지만 미술 과제는 멋지게 해 온 친구를 위해 싸우며 정의와 우정에 대해 배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감정을 공유하고 유대감을 쌓는다.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요청은 프랭크와 에블린 모두에게서 거절당한다. 메리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을 기대했으나 끝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메리, 프랭크, 로베르타가 병원 로비에 앉아 출산을 기다리는 가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새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시간과 마침내 가족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얼싸안으며 환희를 나누는 순간을 간접 경험시키며 프랭크는 메리에게 너 또한 그렇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장면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 영화가 한 생명을 온전한 행복을 느끼는 존재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그건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개의 단어가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들 각자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씨네리터러시
‘씨네리터러시’는 오래전부터 교육의 도구였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석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동심연구소가 추천합니다.
[글]
류승진 감독
다큐멘터리 감독 및 미디어교육 전문가
[작품]
독립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 ‘제5종보급품’ (2018년DMZ영화제입상) 외 다수 영화 제작 및 아트퍼포먼스 제작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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