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Want Love’, ‘Must Love’에 대해 들었다. 자신은 어머니에게 ‘Want Love’를 기대했는데 어머니는 ‘Must Love’로만 자기를 사랑해 주었다고 말이다. 무슨 말인가? 부모니까 사랑해주는 사랑이 ‘Must Love’다. 그러나 ‘부모니까’가 아니라 자식이 사랑스러워서 하는 사랑은 ‘Want Love’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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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t Love’, ‘Must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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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소아 정신과 의사이며 대상관계 이론가인 ‘도널드 위니캇’도 두 종류의 엄마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울면 먹여주고, 응가 하면 기저귀 갈아주고, 징징대면 업어주는 엄마가 있는데 그런 엄마를 ‘Biological Mother’라 한다(위니캇은 그런 엄마를 ‘대상 엄마’라 지칭하였다.). 즉 ‘생물학적 엄마’, ‘아기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엄마’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사실 이런 엄마는 그 누구라도 대신해 줄 수 있는 엄마일 것이다.
반면 ‘Environment Mother’ 즉 ‘환경 엄마’가 있다고 한다. ‘환경 엄마’란 아기에게 엄마만이 줄 수 있는 ‘정서’를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엄마라는 말이다. 그런 환경 엄마와의 정서 교류가 많을수록 그 아이의 정서는 풍요로워지고 여유로워지며 건강하고 견고한 ‘자기’(self)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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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살게 하는
환경 엄마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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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얼마 전 만난 분은 참으로 안타까울 정도로 ‘환경 엄마’가 부재한 채 심리적 고아로 살아온 분이라 느껴진다. 부모가 없는 고아가 있는 반면 부모는 있으나 그야말로 정서적으로 아무것도 준 것이 없는 부모가 있다. 어떤 이들은 ‘부모’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나 친밀함이나 가슴 뭉클한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들을 ‘심리적 고아’라 부른다.
그런 부모에 대해 듣노라면 부모님 스스로가 대부분 정서 장애가 있거나 인격 장애가 심한 분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런 분들이 키운 자녀들은 평생 과거만 산다. 무슨 말인가? 몸은 현재(오늘 몇 시, 몇 분)를 살고 있으나 정신과 삶의 에너지는 모두 다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럴 수밖에.
과거의 문제, 과거의 상처, 과거의 앙금, 과거의 슬픔, 그리고 분노 등이 해결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틈만 나면 멍 때리기를 하며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유령에게 홀린 듯 말이다. 그런 분들이 어느 정도 치유되면 드디어 현실 감각이 살아나게 된다.
그래서 멍 때리는 시간은 줄고 현실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과거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 사람은 현실을 넘어 미래지향적인 전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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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vironment Mother’ 역할과
‘Want Love’를 돕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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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이 무엇일까? ‘희망’이다. 희망이 그 사람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가 그 사람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 그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상 과거에 ‘Biological Mother’를 만나서 그저 ‘Must Love’만 받고 자라온 분들은 결코 혼자 홀로서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반드시 누군가 조금이라도 ‘Environment Mother’ 역할을 해 주어야 하고 ‘Want Love’가 가능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헬렌 켈러 같은 분 옆에는 설리번 같은 훌륭한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한 사람’이다.
필자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게 부모로서의 사랑이든, 친구로서의 우정이든, 사제 간의 사랑이든, 애인의 사랑이든 뭐든 ‘Want Love’를 줄 ‘한 사람’이 모두에게 있길 바란다.
칼 융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이 인생에게 주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지만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은 ‘에로스’ 사랑이라고. 그리고 아가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지만, 에로스의 사랑은 우리를 치유한다고 말이다. 남녀의 사랑만 에로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랑, 부모와 자녀, 친구 사이의 우정, 스승과 제자의 사랑 모두 다 ‘에로스’라는 것이다. 이 에로스의 사랑만이 드라이한 세상에 윤활유처럼 우리의 삶과 정서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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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한 사람’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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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t Love’, 그 ‘Want Love’ 때문에 안데르센 동화가 탄생했다. 슬픈 신데렐라에게 요정이 필요했고, 죽어가는 성냥팔이 소녀에게 나타난 따뜻한 미소의 할머니가 등장했다. 그렇게 현실에서 이룰 수 없다면 동화 속에서라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그 ‘One Object’! 그 한 사람이 우리 부모님, 선생님이 되시길 바란다. 어릴 때 기억나는 건 학습된 교과서만이 아니다. 추억이고, 행복이다.
이제 곧 새해가 밝아온다. 코로나가 아무리 기세등등해도 인류의 희망을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고통도 추억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줄 ‘한 사람’의 다짐으로 시작하는 새해가 되자. 그럴 때 우리도 행복해지리라.
행복을만드는교육
시대가 변화해도 여전히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행복을 만드는 교육’은 유아교육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 ‘중요한 발상’과 ‘실천’을 찾는 동심연구소의 노력입니다.
[글]
변상규교수 l 대상관계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특임교수
[저서]
네 안에서 나를 보다(2007), 마음의 상처 심리학(2008), 자아상의 치유(2010), 때로는 마음도 체한다(2014)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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